‘천년의 금서’…우리나라 ‘韓’의 뿌리찾기

Posted at 2010. 4. 18. 10:05 // in DIARY : 끄적끄적/Chat : 수다 // by Kim, Youngjin

김진명의 신작 소설 '천년의금서' 한민족ㆍ단군의 역사를 부활시키다! 대한민국이여 국혼으로 깨어나라!!!

소설 '천년의금서'를 발표한 김진명이라는 작가는 천재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의문의 죽음을 다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통하여 나에게 처음 각인되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은 어린 학창시절 나에게 처음으로 의로운 분노를 느끼게 해준 소설로 기억된다.

사진: 세계적인 천재물리학자 이휘소 박사

21세기에 이휘소 박사가 부활한듯 김진명의 새로운 소설 '천년의 금서'에서는 세계적인 핵과학자 이정서가 주인공이 되어 대학 친구였던 김미진 교수의 죽음을 파헤치며 시작된다. '천년의금서' 독자는 이정서라는 인물의 천재적인 두뇌를 빌어 대한민국의 한, 한민족의 한, 한국인의 한, 이 '한'의 기원을 파헤치는 역사교수 한은원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천년의 금서'는 극적인 소설적 장치를 통하여 영화를 보듯이 빠른 속도 전개로 그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는 '천년의 금서' 결론 부분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해볼까 한다.

소설의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 한은원 교수는 국사편찬위원회 심의회장에서 韓(한)의 기원을 밝히기에 앞서 대한민국의 상고 역사가 왜 이렇게 축소되고 왜곡되게 되었는지 토로한다.

"진실과는 상관없이 누가 제자가 많은가, 어떤 학교 세력이 강하고 어떤 학파가 국사편찬위원회에 많이 들어갔는가에 따라 이 나라 역사의 뼈대가 세워졌던 겁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의 뼈대는 일본인들에 의해 세워졌고, 그들에게 역사학을 배운 이병도 박사는 해방이 되자 서울대학교에 자리를 잡고 많은 제자를 키워냈습니다. 자연히 일본의 식민사관이 우리나라 역사의 대통으로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는 겁니다."

"이병도 박사는 죽기 전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참회했지만 이미 그때는 제자들이 대집단을 이루고 있었지요.
그들은 그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스승이 노망이 들었다며 오히려 그를 매도하고 주도권을 놓지 않았습니다."

사진: 조선일보에 참회한 이병도 박사의 기고문

"일본인들은 한국의 역사를 유린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따라서 이 <단군세기>를 아주 우습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즉 그들은 단군이 왕이란 뜻을 나타내는 직위의 이름인데도 이걸 사람의 이름으로 둔갑시킨 거지요. 그때부터 삼국 이전의 우리나라 역사는 철저히 부정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단군이란 글자는 믿지 못할 단어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거지요."

사진: 단군세기를 지은 고려말의 행촌 이암


역사교수 한은원은 한민족의 역사가 날조되고 왜곡된 원인을 명쾌하게 짚고나서 <단군세기>에 나오는 '오성취루', '남해조수퇴삼척' 이라는 키워드로 단군세기가 위서라는 강단사학자들의 주장을 일소하는 과학적인 증명을 시작한다.

사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한 오성취루 현상(출처:네이버 역사천문학회)

 
"<단군세기>를 보면 흘달(屹達)이란 말이 나옵니다. 비록 한자로 표기는 되었지만 분명 중국의 한자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글자입니다. 그 옆에는 13세 단군 49년이라는 연호가 붙어 있어 흘달은 13세 단군이라는 말이 됩니다. 바로 그 옆에 오성취루(五星聚婁)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성 즉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이 양자리(婁)에 모여들었다(聚)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13세 단군 흘달 재위 49년에 5개의 행성이 양자리에 모여들었다. 가 됩니다. 이 흘달 49년이 서기로는 언제가 될까요? 기원전 1734년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기원전 1734년경에 실지로 오성취루 현상이 있었는가를 살펴보면 <단군세기>의 이 기록이 사실인지 아닌지, 나아가서는 <단군세기>가 위서인지 아닌지 증명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진: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책 표지 사진


한은원 교수가 이야기한 <단군세기>의 오성취루기록에 대한 증명은 실제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출신의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가 행하였고 2002년도에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라는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같은 <단군세기> 마휴(馬休) 재위 기간에 이 '남해조수퇴삼척(南海潮水退三倜)'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뜻은 문자 그대로 남해의 조수가 세 척 밀려나갔다는 뜻입니다. 이것 역시 달의 움직임을 계산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나라 남해의 조수 현상을 컴퓨터로 추적해 이 기록과 불과 4년 차이 나는 시점에 엄청난 조수의 밀려남 현상이 있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현상은 기원전 931년에 일어났지만 <단군세기>에는 935년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의 기록이란 걸 감안하면 4년의 오차는 받아줄 수 있습니다. 이 남해가 우리의 남해가 아니고 혹시 중국의 남해인가 싶어 저는 달의 운동에 따라 중국의 남해도 검증해보았지만 기원전 935년을 앞뒤로 해서 100년 간은 이런 현상이 전혀 없었습니다."

"척(倜)을 조사하다 저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단군세기>의 위서 논쟁인데요, 이제껏 여러분들은 <단군세기>를 후세의 누군가가 시대를 속이고 쓴 창작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한자 변천사를 연구해보니 이 척은 기원전 6세기 이전에만 길이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 걸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즉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사람들은 이런 길이 단위를 알래야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후세의 누군가, 여러분이 주장하는 후세의 누군가는 절대로 이런 단위를 쓸 수 없다는 겁니다. <단군세기>는 고려 공민왕 때 이암에 의해 쓰인 연대기입니다. 이 척이라는 단위가 없어진 지 2천 년 후에 쓰여 졌다는 말입니다. 이 책이 창작되었다는 주장은 이 단위 하나로 전연 말이 안된다는 게 밝혀진 것입니다."

오성취루, 남해조수퇴삼척의 과학적 증명과 길이의 단위인 '척'이라는 한자의 기원을 통하여 <단군세기>의 위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한은원 교수는 이어서 '한'의 기원에 대하여 밝히기 시작한다.

사진: 동북공정의 시초가 된 하상주 단대공정(하상주 단대공정 책 표지)


"이제 나는 과거 우리나라가 이루었던 고대국가가 한이었다는 걸 여러분에게 밝히려 합니다. 중국의 최초 국가는 하(夏)나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은(殷)나라를 거쳐 주(周)나라로 이어지는데, 이 주나라에 와서 비로소 고대국가의 면모를 약여하게 지니게 됩니다. 은나라는 상(商)나라라고도 불려 현재 중국은 막대한 돈을 들여 이 무렵의 역사를 재정립하고 있습니다. 이 주나라는 기원전 12세기 무렵 세워진 나라로, 여기에 해당하는 우리나라의 역사는 텅 비어 있습니다. 경주박물관에 가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국가가 탄생한 시기를 기원전 40년 무렵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 무렵 삼국이 신라, 고구려, 백제 순으로 생겨났다고 일본인 학자들이 철골을 세우고 여러분들이 콘크리트를 친 역사입니다. 그전은 물론 단군 할아버지의 고조선입니다."

"지금 과학실험으로 보았듯 우리에게는 기원전 18세기에 오성취루의 기록이 있고 기원전 10세기에 남해조수퇴삼척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 텅 비었다는 우리 역사에 이토록 문명화된 나라가 있었다는 얘깁니다. 이제 이 나라의 존재를 역사 기록으로 찾아보겠습니다."

"사서삼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고 공자가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던 바로 그 <시경(詩經)>에 우리 조상의 나라가 한이라는 사실이 나와 있습니다. <시경> 한혁(韓奕) 편에는 한후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한후(韓侯)는 맥족을 복속시키고 그 땅의 제후가 되었다. 한후가 수도에 들자 선왕(宣王)은 경계를 논하였으며 조카 딸을 시켜 밤시중을 들게 하였다."

"<시경>은 주나라 때부터 춘추 중기 사이의 일들을 기록한 겁니다. 한후가 나오는 이 한혁 편은 주나라 선왕 때의 일을 쓴 거지요. 주나라 선왕은 기원전 827년부터 782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즉 한후는 이 시기에 주나라를 방문한 겁니다. 이 한후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한나라의 임금이 아닙니다. 그 한나라보다 최소한 400년에서 600년 전에 존재 중이던 나라의 임금입니다. 그리고 한후의 나라 한이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중국의 모든 서책 중에는 우리의 고대국가 한이라는 단어가 꼭 세 군데에서 나옵니다. 하나는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삼한, 또 하나는 바로 이 <시경> '한혁' 편의 한후, 그리고 또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이 바로 한후가 우리나라 사람인 것을 명백하게 증명합니다. 한을 언급하고 있는 또 한권의 책은 후한의 학자인 왕부가 쓴 <잠부론(潛夫論)>  '씨성' 편에서 한씨의 유래를 따지면서 바로 <시경>에 나왔던 한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경 속 한후는 기자조선의 동쪽에 있는 나라의 임금이다. 우리의 조상이 '오성취루'를 기록한 기원전 1733년보다 약 천 년 후인 기원전 827년에서 782년 사이에 한후는 주나라 선왕을 방문했고 그로부터 천 년 후 왕부는 자신의 저서 <잠부론>에 이렇게 썼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국의 모든 역사책에서 찾을 수 있는 한의 전부입니다."

"조선이란 국명이 처음 등장하는 건 기원전 3세기 이후에 들어서서입니다. <상서>라든지 <삼국지 위지>라든지 <산해경>이라든지 하는 책에 처음 조선이 등장하는 거죠. 기자가 동쪽으로 갔다는 기록도 이때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한후는 이미 기원전 9세기 무렵의 기록에 나옵니다. 그러면 한과 조선 중 어느게 먼저인지 자연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인들이 이 땅의 역사를 찌그러뜨리고 간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 역사는 거기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중국이 우리 역사를 송두리째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심의위원 여러분, 저는 단군 신화로 얼버무려져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대사를 되찾기 위해 '오성취루'와 '남해조수퇴삼척'과 <시경>과 <잠부론>을 내놓는 바입니다."

"한국인은 자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유태인보다 장엄한 역사를 가졌고 중국인들과 맞서며 반만년을 지켜왔습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한의 역사를 되찾고 고조선의 역사를 되찾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한겨레가 되어 통일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온 국민이 동참하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당당하고 자랑스러웠던 역사를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나라의 힘이 반드시 경제에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밥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세웁니다. 우리의 조상을 찾는 일이야말로 자손을 위하는 가장 분명한 길입니다." 

※ 일제 시대 왜곡된 상고 역사와 단군 역사에 대한 최태영 박사님의 증언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道)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고 있으나 만일 그들이 합하여 천당 극락을 세워준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나는 절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이끌고 가지 않을 것이다. - 백범(白凡) 김구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 단재(丹齋) 신채호

 

국학은 민족혼의 상징이다. 우리 역사를 공자의 눈으로도, 석가의 눈으로도, 예수의 눈으로도 보지 말라. 우리 역사는 단군의 눈으로, 단군의 가슴으로 이해해야 한다. 나는 국학원을 통해서 이를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 일지(一指) 이승헌

 
대한민국이여 '국혼'으로 깨어나라!!!

출처: 일지's 피스 라운지